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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역사 등록일 2004/03/02 23:50:44
조회수 3659 추천수 75

조선시대 임금들의 祖(조)와 宗(종)의 기준.
세종이니 선조니 하는 호칭은 그 왕들의 이름이 아니라 임금들이 죽은 후에 그의 신주를
모시는 종묘 사당에 붙인 칭호로서, 이를 묘호라고 합니다. 그리고 '祖'나 '宗'이라는 글자
에는 다같이 '사당'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묘호는 그 왕이 죽은 후 신주를 종묘에 올릴 때
조정에서 의논해 정해집니다. 따라서 임금들은 자신들이 죽은 다음에 뭐라고 불릴지 모르
고 살았습니다! 연산군과 광해군처럼 폐위되어 신주가 종묘에 들어가지 못한 왕들은 죽어
서도 왕 대접을 받지 못하고 왕자 신분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종묘에 그 신위가 올려지지
못했으며 따라서 묘호 또한 없으므로 단지 그들이 쫒겨난 이후나(연산군) 세자 시절에(광
해군) 받은 군호로 불리고 있습니다. 조선조 2대 임금 정종과 6대 임금 단종은 오래동안
묘호를 정하지 않고, 몇 백년 동안 공정왕과 노산군으로 불리우다가, 숙종 때 와서 그들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면서 비로소 정종과 단종이라는 묘호를 얻었습니다. 만일 숙종임금이
아니었다면 '태정태세 문단세...' 가 아니라 '태공태세 문노세...' 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
입니다.

묘호에 조나 종이 붙이는 유래는 4서중 하나인 '예기'에 '공(功)이 있는 자는 조가 되고, 덕
(德)이 있는 자는 종이 된다'고 기술되어 있는 것에 따른 것입니다. 이 기준으로 볼 때 세
종 임금은 덕을 널리 펼친 임금이시므로 '종'이 맞는 표현이고 세조 임금은 조카를 몰아내
고 왕위를 빼앗았으니 아무래도 '덕'으로는 내세울게 부족하니까 할 수 없는 일이지만(?) '
조'가 맞는 표현입니다. 묘호는 대신들이 회의하여 추천하고 왕의 결재를 받아 정하였습니
다. 그러나 공이 많은지 덕이 많은지 판단하는 것은 그야말로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결
국 묘호는 그때 그때 정하기 나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은 한 왕조를 건국하였거나
거의 망한 왕조를 부흥시킨 왕에게만 '조'를 붙이고 기타 왕들에게는 '종'을 붙이는 것이
관례였으며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는 창업자인 태조나 고조 및 중흥 황제들 외에 후대의 황
제들에게는 조를 붙이는 일은 거의 없었으며 고려시대에도 태조 외에는 모두 종을 붙였습
니다.

조와 종은 원래 격에서 차별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시대에는 세조임금 이후 시간이 지나
면 지날수록 '조'를 붙이는 것이 '종'을 붙이는 것보다 더 권위 있고 명예로운 것으로 생각
하였습니다. 그래서 후계자인 왕이나 신하들이 아첨하느라고 억지로 붙이는 경우도 있었
고, 이것이 권력 다툼과 연계되면서 때로는 조정에서 큰 말썽이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묘호는 한번 정한 후에 다시 개정하는 일도 있었는데, 예를 들어 선조의 경우 처
음의 묘호는 선종이었으나 나중에 허균과 이이첨이 왜란을 극복한 '공'을 주장하여 이를
선조로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선조는 인조 반정 이후 허균 등 북인 세력이 쫒겨나고 서인
들이 득세한 다음 실록마져 다시 씌여지는 치욕을 죽은 후에도 당합니다. 또한 인조의 묘
호는 본래 열종(烈宗)이라고 정하였던 것을 아들인 효종이 '호란'을 극복한 '공'을 인정해
달라고 불만을 표시하여 인조라고 고쳤으며, 영조와 정조의 묘호는 원래 영종, 정종이었으
나 1897년 조선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친 후 '종'을 '조'로 고친 것입니다. 이분들은 모
두 당파를 극복하여 국론 분열을 치유하고자 노력한 임금들로 공보다는 덕을 펼치신 분들
인 데다가 이분들 치세에는 특별한 전란도 겪지 않았지만 이러한 원칙론 보다는 이분들의
훌륭한 정치를 기려 '종' 보다 좋은 것이라고 생각되던 '조'를 붙인 것입니다. 순조 임금의
묘호 또한 처음에는 순종이었으나 돌아가신지 8년만인 1857년 순조로 개정됩니다. 아마
도 홍경래의 난 등 여러 민란을 수습 한 '공'을 내세운 것 같습니다. 한편 중종의 경우는 연
산군을 몰어낸 큰 공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여 중조로 하자는 주장이 그의 아들 인종에 의
해 제기되기도 하였으나 신료들의 반대로 그냥 종을 붙이는 쪽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연산군이나 광해군 처럼 왕위에 즉위하여 나라를 통치하였슴에도 쫒겨나서 묘호를 얻지
못한 이들과 달리 왕위에 즉위하여 나라를 통치하지는 못하였으나 후에 그 자식이 왕위에
오르면서 왕으로 추존된 이들에게도 묘호가 올려졌습니다. 성종의 아버지인 덕종(德宗),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元宗-정원 대원군), 정조의 아버지인 장조(莊祖-사도세자), 헌종
(憲宗)의 아버지인 익종(翼宗)이 그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왕자의 신분으로 죽었으나 죽
은 후에 아들들이 왕이 되어 국왕의 지위에 격상된 것입니다. 그러나 선조의 아버지인 덕
흥대원군이나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은 왕자가 아니었고, 또 왕위계승의 차례(항렬)
에도 맞지 않아 왕으로 추존되지 못했습니다. 한편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 증조부, 조부,
아버지인 이안사, 이행리, 이춘, 이자춘은 각각 태종임금에 의해 목왕, 익왕, 도왕, 환왕의
칭호를 받았다가 곧이어 목조(穆祖), 익조(翼祖), 도조(度祖), 환조(桓祖) 등의 묘호를 받
고 종묘에 배향되었습니다.

왕의 호칭에는 묘호 외에도 사후에 중국 황제가 지어 보내주는 시호(諡號)라는 것이 있
고, 또 신하들이 그 왕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지어 올리는 휘호(徽號) 혹은 존호(尊號)라
는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태조(이성계)의 정식 호칭은 '태조강헌지인계운성문신무대
왕(太祖康獻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이었는데, '태조'는 묘호, '강헌'은 시호, '지인계운성
문신무'는 휘호(존호)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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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네요. ^^

출처 : 엠파스 지식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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